시안역 근처의 7Sages hostel은 남문의 Shuyuan 보다 못한것 같다

이곳은 중국인 천지다.

 

 

혁명공원 서쪽문에 소학교가 있는데 그 위쪽에 숙소가 있다. 소학교 하교시간에 보호자들이 애들 데리러 나왔는데 얼마 전 초등학생 흉기사건때문인지는 몰라도

한자녀만 있는 중궈런들의 자식사랑은 끔찍해보인다

 

 

청도역

 

다른문화 다른 풍토를 품고있는 중국!  국가권력의 통제아래 전략적으로 자본주의체제를 받아들인 중국. 그래서 빈부의 차이는 점점 극심해지는 나라.

보기엔 어수선하니 잘 돌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거의 모든것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있는 나라. 곧 다가올 인류의 혼란기에도 억누르고 있을수가 있을까...

 

잘못된 제도와 욕망이 문제일뿐 각 개개인은 전 인류모두 다르지 않을것이다.  한족 우두머리집단의 각성과 소수민족민들의 건투를 빈다

 

여행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이번 서역행은 이만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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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00을 800元 으로 환전

  집에서 석도까지,청도에서 집까지와 비자비,면세주(\70020) 기타 원화로 쓴 잡비 - \356890

  국제현금카드로 뽑은 돈 - \971580

 

   - 총 \1450870 에서 264.6元이 남았고 비자문제로 인천헛걸음할때 들어간 돈이 \32700 -

 

   #교통비: 3713元 (청도에서 인천행 훼리 810元포함)

     숙소  : 524 元

     식비  : 1203원 중 과일값은 249元

 

 

 

 

 탔다하면 서른시간이 넘는 기차에서의 시간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이기차는 에어컨이 가동안되고 선풍기가 돌아가는 좀 낡은 열차였다

 

 

전 중국여행후에는 돌아와서 청소하는 기간이 좀 길어졌었다.  내가 좀 자주하는 것 같은 감을 받았기에 그렇게 되었는데 이번 여행후에는 먹는 거에 대한 변화가

생길것이 분명하다

중국인들 간소하게 먹고 또 많이 먹지도 않고 그런 걸 보면서 우리는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이 엄청나다고 하지 않은가

우린 불필요하게 잘먹고 여러가질 먹고 한마디로 잘먹는다. 중국인들 아침에 바오쓰같은거 사실 한판 다 먹어도 남자가 배부를 양은 아닌데 그것도 몇개만 시켜먹고

장정이 쌀죽만 들이키고 일나가는 모습도 볼수있었고 특히 기차에서 열차밥이 비싸니까 주전부리같은 걸로 때우고 버티는 걸 계속 보면서 앞으로 나의 식문화를

더 절제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먹는거 뿐만이 아니다. 수도,전기등등... 우린 너무 낭비가 심하다.

우리는 수압이 너무 센거 같다. 물틀면 아주 세게 나오는데 그렇다고 금방금방 잠그지도 않고 작은거에도 너무 물을 많이 쓰질않은가

그래서 중국같이 수압을 약하게 하던가 물값을 어느 선 이상쓰면 겁나게 올려버려야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비닐봉지니 나무젓가락이니 일회용품을 엄청나게 써대는데 아직 재활용이나 분리수거 개념이 없어서 막 버리고 있다

땅덩어리가 크니까 묻을때는 많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시골마을에도 온통 쓰레기투성이고 선로지나는 곳에 쓰레기 없는 곳이 없었다.

 다시 우루무치로 갈수도 있었지만 어짜피 우루무치에서 두시간 거리인 투르판을 거쳐 시안으로  가기때문에 굳이 우루무치까지 올라가지않기로 했다

그리고 100배즐기기책에 투르판의 한적한 마을의 멋에대해 언급했기에 투르판에서 하루 머물고 시안으로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투르판역에 내리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투르판시내까지 역에서 차타고 가는 줄은 알고있었지만 지난 번 볼러에서의 악몽도 떠오르고 투르판시내까지 가서 괜히 하루 더 머물 이유가 전혀 없어보였다

포도구니 하는 덴 이미 나같이 중국에 불평투성이가 아닌 사람도 돈내고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는 여행기를 보고 왔기에 상상속에 뜨거운 햇볕아래 인적드문

투르판의 여유로움같은 게 허상일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드는 지금은 어서 빨리 동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안가는 표가 없다. 처음이었다면 매우 당황했을텐데 이런경우는 이미 청도에서 경험해서 일단 시간이 필요하단 걸 알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

중국은 어디 앉을만한 데가 없다. 어슬렁 거리다가 목좋은 곳에 위치한 가게도 있고 다른 물품도 파는 상가에 가서 병맥주하나 들고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내려놓았다

여기서 버틸수 있으면 버티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카메라에 관심을 갖고 찍어달라고 하였다.이게 웬 떡이냐 싶어 사진을 찍고 컴퓨터가 있길래 사진까지 전송하였다

이때 인터넷이 안되었는데 그래서 안되는 줄 알았는데 몇 시간 후에는 사용할 수 있었다. 인터넷도 시간제약이 있는 건가?

 

 

 

무지 더운날 반 나절을 그냥 기다리다가 저녁 8시쯤  다시 시안표를 시도했는데 대답은 메요!

내가 미리 알아온 시간은 23:47 과 23:57 01:43 에 시안가는 열차가 있었다. 아침 6시에도 있었고 그런데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론 한수제도때문에 없다고 했을텐데 지금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도 없다는 게 좀 이상했다. 모든 열차에 자리하나 없는 건 아닐것이다

불행히도 여긴 창구가 하나뿐이라 같은 사람한테 계속 시도해야 했다.  이 아줌마 아주 차갑고 기계적으로 메요,메이요를 남발하기에 하나씩 적어보기로 하였다

제일 빠른시간부터 하나씩 쪽지에 적었다.메요! 또 다른거 적으면 메요! 그러다 이상해서 중단을 상단으로 바꿔보니 표가 있었다.

에라이~ xxx  정말 욕이 절로 나온다. 아무리 맘을 다잡으려해도 이런일이 비일비재하니 마음수련하는 수도자는 중국오면 평생 쌓은 도가 허물어질것이다

담날 새벽 6:45 출발 티켓이었는데  어쩌면 조금만 있으면 한수제도 풀려서 23시대 표가 곧 나올지도 모르고 또 그 시간대 상단은 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표를 구했다는 안도감에 그리고 뒤에 사람이 있어서 그냥 나왔는데 아무래도 그날 늦은 밤 표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빈관에 방을 잡고 아까 낮에 알아둔 목간통을 갔다

목욕탕은 先浴場 을 써서 보여주어 알아냈다. 그냥 선욕만 적어도 될듯하다.

 

 

 

2년전엔 만주에 목간이 5콰이정도 였는데 10콰이였다. 많이 올랐구나

 

 

창밖을 보니 밤 10가 넘은 시간에도 환한 투르판의 모습이 보였다   여행의 막바지로 향하는구나

 

 

중궈...목간통 가봤니....

 카슈가르에 왔으면 타쉬쿠르칸도 가보고 카라쿨도 들러야 하지만 일치감치 안가기로 결정하였다

별거없을거 충분히 짐작을 할수있었고 더이상 중국에 있기가 싫었다. 타클라마칸사막도 갈 여지가 있었는데 사막공로로 버스타고 갈텐데 역시 별거없을거란거

확실하다. 누구처럼 직접 걸어서 타클라마칸을 횡단하기 전엔 어떨거란지 짐작이 되었다

 

 

카슈갈을 떠나는 아침

 

 

 

 

버스가 안다녀서 택시를 타야했다  역까지 20콰이

 

카슈가르 역에서 보안검색을 하는데 과일봉지속에 음료수병이 있었는데 거기다 커피를 넣었었다. 이게 뭐냐고 해서 커피라했더니 마셔보란다.

그래서 한모금 마시니 다른 유제품병에 든것도 마셔보라는데 하도 같잖아서 그냥 가버렸다.  앞에서 말한 여러번의 반복적인 검사를 통과해 기차에 오르려는데

표를 달라고 한다. 무시하고 오르는데 뒤에서 잡는다.  야이 xxx아! 표가 있으니까 여기까지 왔지 이런 xxx들!  터져나왔다

 

기차에서 식사를 할때 식당칸에 가서 메뉴판에 있는것을 시키는 것 보다 도시락을 먹는게 더 좋다.

직원이 수레끌고다니면서 도시락을 파는데 이 도시락이 맛도 좋고 삼찬이라 우리입맛에도 더 좋다고 본다

메뉴에 있는 음식은 밥에다 탕추가하면 최하가 20콰이인데 볶음하나만 나오는 반면 도시락은 토마토와계란 볶은거,야채볶음,돼지고기또는 닭고기감자볶음이 나오

는데 붉은 고추를 넣어서 우리입맛에 잘 맞고 가격도 20콰이라 괜찮다.  식당밥보다 기차도시락이 개인적으로 입맛에 제일 맞았음.

아침은 10콰이정도,저녁은 15콰이정도. 

난에 대해서 기대를 하고 왔는데 너무 뻑뻑해서 먹기가 매우 힘들었다

아마 이스트를 안넣고 그냥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넣어 구워 딱딱하고 뻑뻑해서 아닌가싶다. 아침에 난과 커피를 마시려 준비를 해왔건만....

 

카슈가르에서 3일씩이나 머문것은 지금도 의문이다

사진이야 안갖다줘도 그만인데 아마도 이곳을 끝으로 돌아가니까 좀 숨돌리는 차원에서 하루 더 머물렀던것 같다

사진을 가져다주려 어제의 그곳으로 향했다  어제는 버스에서 내려 걸어갔는데 오늘은 그쪽의 이동수단인 달구지를 탔다 1콰이

 

 

 

 

 

 

 

문 안쪽이 궁금했는데 허락을 받고 찍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 두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애들답게 아주 맑고 자기들끼리 재밌게 놀고있다가 아빠가 양고기든 빵하나를 주니 딸래미가 반으로 갈라

친구와 나눠먹길래 이뻐서 사진을 찍으려하자 숨어버렸다.  간신히 그나마 얼굴나올때 찰칵!  빨간옷이 주인딸래미

 

 

애들은 이래서 좋다! 항상 밝고 표정에 근심이 없다. 작은거에도 항상 즐거워한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돌아갈것이다. 물론 아직 갈길이 멀지만 돌아가기전에 상념에 안빠질수가 없었다.

여행오기 전 여행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여행이란 뭘까, 경치좋은 곳을 찾아가는 게 여행인가? 다른문화체험? 여행은 즐거운것인가 꼬리를 무는 의문만 남긴 채

여행을 떠났다. 일상에서 벗어난 후 바라본 다른 삶들은 제도와 관습차이가 있을뿐 기초적인 바램과 욕망은 비슷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날 북조선과 포루투칼의 경기가 있었는데 북조선이 골을 계속 먹고있었다. 양인들이 재미없어서 다들 떠나고나서 나도 자릴떴다

여행내내 마셨던 위스키가 이제 마지막이었다. 지나가던 양인이 갑자기 아는 채를 해서 보니 자기가 스코틀랜드 Dumbarton에서 가까운 곳에 산다고 반가워한다

나는 발렌타인 몇년산인가만 봤는데 라벨을 보니 스코틀랜드 덤바튼지역에서 만든 술이었다

 

 

양인들이 다 떠나고 오늘은 이방에서 나혼자 자게 되었다

 

 

밑에선 양인들끼리 어울려 있었는데 술까지 마시고나니 묘한 소외감이 들었다

내가 영어를 할줄알아도 그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을테지만 양인들끼리 어울리는 모습에서 알수없는 감정이 든건 사실이다

가만보면 어글리 양키같이 보여서 미국놈들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면 호주사람들이 그렇고 프랑스는 소수,홀랜드도 소수, 이스라엘같은 경우는 여행하는 차원이

우리와 질적으로 다른것 같다. 우리는 카라쿨호수에 그냥 가보거나 잘해야 한번 자고 오는게 전부인데 걔네는 카라쿨에서 보이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영국인들이 내가 보기엔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처럼 과거 영광의 나라답게 뭐랄까 여유있고 자연스럽고 풍부한 느낌을 주었다

영어가 세계공용어가 된 세상에 모국어가 영어인 영국인들이 양인들 사이에서도 주도적이고 자연스럽다

 

한창 감상에 젖어있는데 젋은 중국놈이 근처에 왔는데 분위기를 확 깼다. 하여튼간 이 중궈런들 눈살찌푸리는 행태들 질린다 질려

 어제 카슈가르에 거의 다 왔을때 기차에서 봤던 중국시골마을에서 항상보이는 길쭉난 나무들이 양쪽으로 서있고 수로를 통해 물이 풍부히 흐르는 그런 마을들을

어떻게 가볼수없을까 했는데 숙소에 버스노선을 보니 대충 그쪽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그래서 찾아나섰다

 

 

 

 

 

 

지도와 나침반을 보며 어제봤던 마을쪽으로 가다가 수확중인 어느 밀밭을 지나는데 아저씨가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달라는 거 같은데 위구르인과는 단어하나도 통하질 않는다. 이들은 중국말을 할줄을 모른다. 난 사진찾아서 내일 갖다주겠다고 했지만 전혀 알아듣지를 못

하였다

 

 

 

 

이슬람 묘

 

 

뜨거운 햇볕에 걸어다녔더니 더위를 먹어 점심도 안먹히고해서 그냥 숙소 침대에 누워 뻗어버렸다

 

 

한숨자고 있는데 밖에서 양인이 썬데이어쩌고하는데 그러고보니 오늘이 일요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책에는 일요시장을 보기위해 양인들이 일부러 날짜맞춰서 온다고 하던데 또 안가볼수가 없어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보았다

 

정말 별거없었다.

우리네 70년대,80년대 재래시장정도? 거의 비슷한 광경이다. 양인들한테도 별 흥미있을만한 곳은 아닐텐데 우리는 진짜 안가도 될곳이다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음식이 입에 맞아 카슈가르에서 식사걱정은 안했는데 여긴 우루무치완 또 다른것 같다.

간판에 닭이 그려있어 저걸 달랬더니  훈제닭고기가 나왔다

 

 

육고기를 먹으니 금새 기운이 돌았다.

 

 

여긴 주로 양꼬치를 먹는데 먹어보니 양고기가 익숙치않아선지 맛있게는 못먹었다.

 

중국은 과일값이 비교적 저렴하다   과일사는것도 매일일과가 되어버렸다

 

 

 

찍고싶은 아이중 한명인데 얼굴에 뭘 쓴 모습을 찍고싶었다.

이여인들 그 좁은 곳에서 잘 내려오지도 않는다. 어디갈땐 애기를 다른 여자에게 맡기는데 애기가 울지도 않고 서로서로 상부상조가 잘 되었다

 

 

남자에게 카자흐스탄이냐고 물으니 위구르라한다.

삼장법사가 이곳을 지날땐 불교지역이었다는데 그후 이슬람세력이 자릴 잡았나보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만나는 교착지점! 그래서 얼굴도 동양인 분위기 풍기는 얼굴

도 종종 보이는 다른인종과 종교가 오갔을 란주서쪽의 지역은 그야말로 황무지가 대부분이다  작은 마을이 있는 곳도 있지만 주로 풀도안나는 그냥 버려진 벌판의

계속이다. 차나 기차가 없었을때 사람이 살지못하는 이런곳이 완충지대 역할을 했을것이며 살더라도 띄엄띄엄 살았을 유목민들은 강력한 국가를 세우지 않은채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국경이란게 생기고 졸지에 중국이란 나라에 편입이 된것인데 란주 서쪽 북쪽으로 꽤 멀리에 국경이 정해진것은 그 사이에 큰 산맥이나 강이

없어서이지 않았을까

 

 

중국아저씨가 자꾸 말을 시키는데 가만 들어보니 우리말 단어를 말하고 있었다

'발로차는 시늉을 하며 가, 빨리가'이런소릴하고 찰떡,차,현대등등 꽤 여러개를 말했는데 어디서 저런걸 겪었는지 모르겠다

 

 

중국인과 위구르족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서로서로 무시를 하는데 중궈런의 태도가 같잖타. 마치 자기가 죽 살던 곳에 귀찮고 말썽많은 이웃이 껴들어서 꼴보기싫다는 태도들이다

 

이 위구르남자 신심이 매우 돈독하다. 시간되면 미니 카펫을 깔고 기도를 하는데 하루에 세네번은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그때 여자는 안하는 걸까.

 

 

내릴때가 되어가니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다.

하단이 비어서야 비로소 위의 여자들이 내려왔는데 내릴준비하고 기다리는데 남자가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여자가 말을 한것같기도 하다. 사실 내가 호의를 많이 베풀었다. 자릴 바꿔주고, 애기 배설물 휴지로 닦는거 보고 물티슈주고 콧물날때 또주고 애기 과일도 주고...

 

사실 실제모습이 훨씬 예쁜데 사진이 이상하게 나왔다. 저렇지가 않은데 아무튼 찍을수 있게되어서 매우 기뻤다

 

 

 

 

애기가 나한테와서 살짝 건드렸는데 이젠 경계심이 풀어져서 나온 친근감의 표시라고 느꼈다.

그런데 남자가 한마디하니까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보통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뭇남성한테 보이지 않으려 눈만 내놓는 문화인데 뭇남성인 날 건드린것에대한 경고같았다  굉장히 남자말을 잘듣고 따른다. 애기들은 징징대거나 그럴텐데 아주 말을 잘들었다

 

 

카슈가르에 오니 아예 뒤집어쓴 여인들이 보인다. 앞은 어떻게 보고 다니는지 궁금타!

 

 

카슈가르 old town youthhostel은 특이하게 욕조가 있었다

 

 

 

old town 골목

 

 

 

 

 

 

 

 

old town 건물들보면 벽돌위에 흙과짚을 섞어서 발라놓았는데 곳곳을 허물고 공사중이었다

이곳도 그럼 곧 허물어지지 않을까싶다.

 많은 기대를 했던 우루무치와 결정적으로 카나쓰와 싸이리무가 완전 헛걸음이 되어버려서 사실 이번여행은 대실패로 마감되고 있었다

카나쓰만 따져도 택시비와 입장료와 한끼밥만해도 800콰이이다 100콰이에 18000원으로만 잡아도 15만원인데 아무튼 타격이 크다

 

 

기차기다리는데 내 옆에와서 카메라를 만지려고 하길래 아들래미 찍어준다고 돌려세웠다

 

 

조금있으니 저쪽에서 부인이 수줍게 자기 딸래미를 찍어달라고 하였다

 

 

시안에서부터 기차를 탔다하면 서른몇시간이었다.  이번여행은 기차안에서가 거의 반은 되는거같다.

기차에서 좀 편히 시간보내는 방법은 식당칸으로 가면된다.  그냥 죽치기는 좀 뭐하니까 일단 식사를 한다. 그후 남아서 두어시간은 거뜬히 갈수가 있다

직원이 뭐라고 하긴하는데 한국인인줄 알면 말도 안통하고 나때문에 크게 문제될건 없으니깐 그냥 내버려두곤한다

식당칸 정경은 항상 저모습인데 흰가운입은 주방장이 딱 자리잡고있고 주변에 기차수리공들이 있고 여직원은 있을때도 있고 없을때도 있고 가끔가다 기차에서

신분증검사하는 경찰도 껴있을때도 있다. 중국인들 수다를 많이 떠는데 항상 저 자세로 수다떨다 말이 막히면 누가 또 날 힐끗보고 한궈런어쩌구 하면서 또다시

수다를 이어간다. 주방장은 땀이나면 옆의 커튼으로 닦는다

 

 

연실낭자와 같이가던 프랑스인이 담에 중국여행한다면 우루무치에서 카시가는 열차만 타고싶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이색적인 풍경이지만 다시 보고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열차를 탔을때 얼굴에 이슬람복장을 한 애기들이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굉장히 기뻐했다.

왜냐하면 우루무치에서도 그런애기들 사진찍고 싶었는데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오다니 앞으로 서른시간넘게 가니 찍을 기회는 있을것이라 생각하고 느긋이

기다렸다. 그러다 여자와 애기만 있을때 애기사진좀 찍을수있냐고 하니까 단번에 거절한다. 아...이럴줄은 몰랐는데...

사실 처음에 남자 한명과 부인 그리고 애기, 또다른 여인 두명과 아동 두명에 애기가 일행인데 남자 부인의 좌석이 상단이라 중단인 나보고 바꿔달라고 해서 바꿔주었었다

남자는 물론 상단인데 같이 상단에 누워 쉬고 있는데 카메라에 관심을 보여서 이사람을 시켜서 애기사진찍게하면 되겠다싶어 자동초점으로 바꾸고 찍게 했는데

사진이 안나왔다. 얼타쿠나싶어 침대를 건너가 내가 직접 애기사진을 찍었다  이름은 '야스모언'

 

 

이 여인들을 보니 눈만 겨우 내놨다.  이 더위에 치마안에 또 뭘 입은거 같은데 땀띠나서 살수가 있을런가...

같은칸에 머리에 스카프만 두른 여자와 스카프를 턱까지 감싼 여인이 있었는데 같은 이슬람아니냐 왜 다른복장이냐고 물었는데 - 사실 몸동작으로 물었다 -

아마도 종파가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인도에 카스트제도도 그렇고 바가바드기타인지 고문서에 사람의 신분을 나누는 문구가 있긴한데 그건 해석을 잘못한것이나 조중동마냥 앞뒤문맥 안따지고 연관

관계무시해서 그런게 아닐까. 종교는 사람이 만든거지 신이 만든것은 아닐것이다. 신성한 종교심은 애초에 있지만 그후 다 변질되어서 이런 제도들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사람을  구속하고 차별하고 억누르는 종교는 있을수도 없고 잘못된 것이리라

 

야스모언이 돐이 안된거 같은데 아내의 배가 불룩하다. 옆에 지날때 몸에서 시큼달작지근한 냄새를 풍긴다

이 더위에 땀냄새와 애기냄새 - 애기 배설물을 휴지같은걸로 치우는데 손에도 묻히고 그럼 - 가 혼합된 냄새였다.

이게 몇번째인가

이젠 white birches 304호가 집같이 편하다.  다시말하지만 앞의 4bed방보다 전망좋고 넓어서 나는 이곳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중국인이 많다. 중국인들 이제 먹고 살만해지니까 국내여행을 다니는데 유스호스텔을 이용해서 다니는 듯 하다. 

하긴 다른문화권지역이니까 준외국여행이라고도 할수있겠다. 앞으론 중궈런때문에 호스텔에 방구하기 어려울것 같다

 

 

 

이제 내가 걸어다녀 알아낸 교통편에대해 말하겠습니다   어렵게 들려도 알고나면 쉽습니다. 그냥 제 글 적어서 고대로 가면 역과 숙소는 무난히 갈수있다고 봅니다

 

우선 우루무치역에서 나오면 2번이나 52번 버스를 타고 한 네정거장(정확한 정거장수 아님) 정도 가면 홍산이란 정거장입니다

발음이 비슷하니까 사람들한테 홍산을 말하면 됩니다. 홍산이란데서 내리지 말고 한정거장 더 가서 내립니다

내려서 차가는 방향으로 전진하다가 우측으로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정류장에서 105번을 타고 다섯번째에 내리면 됩니다

정류장간 거리가 우리보다 머니 잘 기억해야합니다. 저도 딴생각하다보면 이게 몇번째였는지 자주 까먹었습니다

다섯번째에 내리면 뒤쪽으로 그러니까 버스가 왔던 방향으로 수십미터정도에 있는 건물인데 위구르 식당이 있고 주류판매하는 가게가 있는 건물입니다

그 건물 옆쪽으로 보면 둥근 간판에 호스텔 마크가 보입니다

버스에서 내려 공중화장실이 보이면 맞게 내린겁니다.

 

그리고 역이나 이슬람시장에 가려면 white birches에서 길을 건너 105번을 타고 네번째인가 다섯번째 정거장에 내려야하는데 숫자세다 헛갈려서 정확치않습니다

하지만 염려안해도 됩니다.고가도로를 탔다싶으면 그담에 내리면 되는겁니다. 고가도로를 타고달리면 왼쪽을 보세요. 그럼 무슨 언덕같은게,절벽도 보이고 할겁니다

그게 바로 홍산입니다. 그렇게 버스가 고가도로를 타고 내려와 유턴을 하고 우측으로 돌아 섭니다. 거기서 내리면 됩니다

내려서 뒤를 돕니다 그리고 길을 건넙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방향바꿔 직진하면 4거리입니다 계속 직진합니다. 그러니까 찻길을 건넌다는 소립니다

위론 고가도로고 그 밑으로 찻길을 건너는겁니다.건너서 오른쪽으로 방향바꿔 직진하다 왼쪽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정류장에서 2번을 타면 됩니다

여기 52번이 왔던지 기억이 안나는데 2번이나 52번을 타고 한정거장후가 바로 홍산이고 그후 두정거장후에 내리면 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

 

그러니까 2번타고 세정거장후가 시외버스터미널이란 소립니다  내려서 버스왔던 방향으로 뒤로 조금 가다 왼편으로 코너돌아 수백미터 가면 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

이곳은 아까 105번이 오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고가도로탄후에 내리지 않고 더 가면 여기까지 오는 겁니다

터미널 가기전에 있는 정류장에서 912번 타고 다섯번째에 내리면 이슬람시장이되는 겁니다.

올때는 건너편에서 타면 되겠죠? 그리고 기차역은 당연히 2번 52번타면 되고요 종점이 역입니다

 

이게 정류장수는 얼마안되는데 우루무치가 교통체증이 심합니다. 그리고 차가 매우 후져서 아주 달달달 거리면서 다니기때문에 은근히 시간잡아먹습니다

우루무치는 이슬람시장외엔 갈만한데가 없기때문에 이노선만 알면 무난할것으로 보입니다. 중간중간 공원같은게 있던데 이런곳도 그리 어렵지 않게 갈수있다고

봅니다.

 

참고로 홍산의 맥전유스호스텔은 아까 홍산말씀드렸죠? 거기 큰 로터리인데 parkson인가 하는 백화점이 보일겁니다 그건물 오른편옆을 보면 한자로된 간판이 보입

니다,무슨 청년여사 이런 한자였던거 같습니다.

 

중국사람들 보면 우리와 차이가 나는게 예를 들어 상당히 차도가 막히고 얽혀있어서 지체되고 있는데 거기서 누가 또 껴들어서 중앙선까지 넘어서 반대차량하고도

얽히게 되어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우리같으면 욕에다 빵빵거리고 난리가 났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은 그상황이 되면 해당자에게 뭐라하지않고 서로서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만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자기네들끼리야 불편이 없을지라도 외국인입장에선 무지 불편하고 짜증나는 중국인들인데 가만보면 악의는 없습니다

그냥 빨리가려고 하다보니까 단순하게 앞으로 나가는 겁니다. 다른사람 터치해가면서.앞에서 누가 새치기를 하면 그사람을 주목하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그런게 아니고 진짜 단순하게 슬금슬금 나가게되는겁니다. 가고싶으니까. 다른사람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의식이 매우 희박하다.

지켜본 결론입니다

 

 

밤새 덤프트럭소리에 시달려야했던 사실이 너무나 기가막혔다

이곳은 볼러에서 이닝으로 가는 길목인데 길이 났으니 나같은 여행자가 올수있는거고 하지만 길이 남으로 해서 자연과 사람은 파괴되고 변질되는 이런 현상은

모순적이다. 단지 난개발은 안되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모두에게 이로운 방향의 개발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자연을 포함해서.

 

 

저 드넓은 초원에 철조망으로 구분이 져있다

 

 

무슨 새소린가 했는데 타르박이 내가 멀리서 올때부터 경고음을 보내다가 가까이 오면 자기 굴로 피신을 한다. 보니까 주변에 여러개의 굴을 파놓았다

 

 

호수주변이나 산에 꽃들이 피어있는데 사실 온통 짐승분뇨밭이다. 거기다 휴지,비닐까지 버려져있다

 

 

 

 

 

 

설산은 추운곳인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저 눈이 어떻게 안녹고 있는지 궁금하다

 

 

 

저 길너머가 볼러쪽임

 

 

 

유르트뒤쪽 동산인데 어제 난 저 숲을 유력한 뒷간으로 눈여겨 보았다

역시 숲으로 들어가니 완전 인분지뢰밭이었다. 현지인들도 하나 둘 숲으로 향했고 호객담당인 딸은 아예 올라가지도 않고 중간 간판뒤에서 볼일을 보는데 저쪽에서 누가 오면 오지말라고 소릴친다.  그리고 어떤 가족은 첨에 관광객인줄 알았는데 애들손잡고 마치 소풍가듯이 산으로 올라가고 즐겁게 다같이 내려오는 모습도 볼수가

있었다.  반면 양인두명과,양인화된 중국인부부는 밑의 냄새나고 들어가면 구역질나는 화장실로 가는데 친자연적인 동양인의 순응적인 자세와 차이가 난다고 보면

억지일까? 약간 억지같기는 하다 ^^

 

 

밑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역시 고기야채볶음면 15콰이

 

이제 문제는 볼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인데 뙤약볕에서 그리고 어제 그 운전수가 말한 시간이 저쪽 출발시간인지 여기 도착시간인지가 확실치가 않다

중국인들 융통성으로 봐서 여기 도착하는 시간을 말했을거 같지는 않았는데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말타라고 조르던 남자가 저쪽에서 오는 버스가 볼러간다고 하는

표시에 그만 그 버스를 탔는데 내가 볼러가냐고 했을때 앞의 여자가 뭐라고 말했는데 내가 거기가니까 같이가면 된다는 말같았다. 사실 이 버스를 타지말고 어제의

그 낡은 버스를 탔어야했다.

버스에서 졸다깨다하면서 가는데 버스기사가 내리라고 한다. 앞의 아줌마를 따라가는데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이 버스는 볼러로 가지않고 지나가는 찬데 그 중간

에 내려서 갈아타서 볼러로 갈수있는 거였다. 아줌마는 내가 가니까 같이가면 된다는 말이었고.

어제 볼러에서 싸이리무까지 33콰이였는데 오늘 싸이리무에서 내린곳까지 30콰이. 내린곳에서 볼러까지 13콰이를 냈고 또 볼러까지 꽤 상당한 거릴갔는데 역시

싸이리무갈때의 낡은 버스를 타고 오는 게 맞는 일 같았다. 말타라고 조르던 남자가 볼러가는 차는 4시에 온다고 했는지 한것 같은데 그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볼러터미널에서 볼러역까지 가는 버스는 터미널앞에서 타면 된다  19;30에 출발

터미널앞 가게에서 파는 병에든 요구르트가 있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이날 무지 더운날이라서 계속 마셨다. 하나에 2콰이

 

버스일꾼이 기차역간다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잘 들어보니 '훠처장 훠처장,꼬추장'한다  이것도 역시 각음절을 강하게 발음하지 말고 흘리듯이 '훠처장'으로 발음

해야 할것 같다. 지금까지 난 바보같이 책에 나온대로 '후오처,후오쳐' 하고 있었다. 얼핏 꼬추장으로 들리기도 함.

 

이후 기분나쁜 상황설명은 하지 않기로 한다. 보는 사람만 피곤할뿐이다. 정말 중궈런의 비매너행위와 상스러움, 공공생활의 문제점들은 겪어본 사람은 알것이다

이놈에 버스가 늘 그렇듯이 왜 그리 슬글슬금 다니는지 그러다가 기사가 뭐라고 하니까 다들 우루루 나간다. 엉겁결에 따라나가서 또 무거운 배낭을 꺼내고 들고

버스를 갈아탔다. 다행히 앉을 자리는 있었는데 사람들을 계속 태웠다. 이제 갈만도 한데 그러고 수십분을 더 기다린다.

평소 에어컨바람을 싫어해서 버스에 타면 항상 잠그지만 이날은 내 얼굴에 직접 쏘일정도로 덥고 버스에 사람이 꽉차서 더 더운 상황이었다.

또 볼러역까지 왜 그리 오래달리는지, 한시간넘게 달리다 겨우 도착해서 다들 또 서로 먼저가려고 내달려서 역내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고 줄을 서있는데 난 땀을 식히려 지켜보며 한산해지면 표를 사려고 하는데 누가 표산거 보니까 출발시간이 얼마안남았다  엇! 표를 못사면 못타는건가? 그러는데 갑자기 매표창구가 닫히더니 다들

그냥 나간다. 나도 따라나가 기차를 탔는데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또 말도 안통하고 어찌어찌해서 어느칸에 가니 거기서 한 직원이 표를 팔고있었다

 

그제 씻고 그동안 못씻었는데 오늘 그냥 기차에서 자야했다. 오늘 배낭메고 다니면서 땀많이 났는데  찝찝한 하루다

몸땡이도, 안갔으면 좋았을 싸이리무갔다돌아가는 현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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